좋은 엄마?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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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우리는 모두 '좋은 엄마'입니다
좋은 ‘엄마’. 엄마들의 세상은 아이들만큼 바쁩니다. 전업맘은 전업맘대로, 직장맘은 직장맘대로 정신없이 바쁩니다. 엄마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들어가 보면, 세상에! 아이에게 손수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이는 것. 예쁜 옷을 만들어 입히는 엄마. 사진은 또 어쩜 이렇게 전문가처럼 잘 찍는지,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순간 감탄사가 나옵니다.
또 한편으로는, 꽤 괜찮은 엄마라 자부했지만 저런 대단한 엄마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도 밀려옵니다. 잘 입히고, 잘 먹이고를 떠나, 이제는 잘 가르치고, 잘 놀아주는 엄마. 육아에 대한 정보는 줄줄 외고 있는 엄마, 정말 멋진 엄마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정해놓은 ‘좋은 엄마’에 대한 기준. 괜찮으신가요?
◇ ‘육아’의 적성검사,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이와 할머니가 함께 상담을 왔습니다. 엄마는 일하는 엄마였고, 가정 내에서 육아를 전담한 사람은 할머니였습니다. 유기농 음식을 해먹이고 공기 좋은 산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할머니는 제가 봐도 대단해 보였습니다. 아이의 발달에 대해서도 얼마나 세심하게 관찰을 했는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에 대해 엄마에게 물어보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습니다.
“사실 잘 몰라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느껴집니다. “내가 주 양육자가 아니면 모를 수 있어요. 괜찮아요.”
“에효, 엄마가 돼 가지고는, 요즘 젊은 엄마들은 낳기만 하고 키울 줄을 몰라요.”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한마디 거듭니다. 엄마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더 깊어집니다.
“어머니는, 육아가 적성에 맞으세요? 아니면 직장에 일하는 게 적성에 맞으세요?” 아이의 엄마가 옅은 미소로 답합니다.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아이로 인해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아이 키울 때 ‘친정엄마’ 있는 여자들이었다며 육아를 전담한 할머니를 한껏 칭찬해드렸습니다. 여자로 세상에 나와 살아보니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경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육아와 살림 등 아직도 ‘여성’에 대한 구시대적인 고정관념은 늘 우리를 따라 다니며 괴롭힙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합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감은 더해갑니다. ‘좋은’ 엄마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육현장에 있지만, 우리는 같은 여성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가담해,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를 무의식중에 나눕니다.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하거나 방임을 하는 엄마를 나쁜 엄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잘’하지 않으면 그 반대말이 ‘나쁜’이 돼 버리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
매끼니 마다 유기농식재료를 구입해 앙증맞은 데코를 곁들인 집 밥을 매번 만들어 내는 엄마는 좋은 엄만데,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든 어떤 날은 짜장 라면을 끓여서 저녁으로 내놓은 날이면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오는 것. 허둥지둥 아침에 눈을 떠보니 출근시간이 다 돼 가는데, 남편은 한 마리 백조처럼 혼자 들어가 씻고, 옷을 입고, 밥을 먹으러 차려놓은 식탁 앞에 앉습니다. 그 사이에 나는 아이들을 깨우고 옷을 입히고 세수를 시키며 빛의 속도로 샤워를 합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밥상을 차려주고는 부리나케 대충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머리를 말립니다.
결국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퇴근 후 해야 할 설거지거리를 잔뜩 싱크대에 담가놓는 정도로 마무리 하고 아이를 등원시키려 어린이집에 달려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기저귀를 갈지 않았다는 걸 아이를 카시트에서 안아 내리는 순간 묵직한 기저귀가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 알았습니다. 아침나절의 전쟁 같은 시간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기저귀를 미처 갈지 못했으니 갈아달라는 내 부탁을 들어주는 눈빛이 ‘화장할 시간은 있고, 애 기저귀 갈 시간은 없었니?’ 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하며 그냥 짜증이 납니다.
어쩌다 퇴근이 늦어진 날 아이의 가방 한번 열어보지 못하고 읽지 못한 알림장에는 여벌옷이 없으니 챙겨달라는 메시지도 읽지 못했고, 아이의 도시락도 씻어놓지 못한 날. 씻지 않은 도시락이 아이가방에 들었는지도 모르고 등원시킨 날이면 어김없이 선생님의 ‘조금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를 받고 ‘나는 엄마로서 자질이 없나보구나’ 자괴감이 밀려왔던 경험.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다보면 한번쯤은 있지 않았을까요? 바빠서, 혹은 정신이 없어서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건, 정말 ‘엄마’로서 가치마저 훼손돼야하는 아주 큰일일까요? 역으로 남편은 아이들에게 밥 대신 몸에 좋지 않은 짜장 라면을 끓여 먹이는 주말오후에도 ‘좋은 아빠’가 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말입니다. 매일매일 책읽어주고 어르고 달래주면서도 좀 더 잘, 친절하게 놀아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엄마의 몫이고, 일주일 내내 얼굴보기 힘들다가도 주말 오후 아빠의 마법 같은 5분 놀이에도 세상 둘도 없는 아빠가 된 것 같은 의기양양함이라니.
물론 보육교사들 보다 더 훌륭하게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재미있는 하루를 선물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저 육아가 적성에 맞는 엄마인 것이지, 사실 그것만으로 ‘좋은 엄마’라고 판단하기는 이릅니다.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요리는 똥손이라 어떤 음식을 만들어줘도 아이들의 반응이 시큰둥한 부모라고 ‘나쁜 엄마’는 절대 아닙니다. 그저 살림과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 엄마일 뿐입니다. ‘적성검사’ 많이 해보셨을 겁니다. 육아가 적성에 맞으신가요? 개개인마다 성격도 적성도 다르듯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에 맞고, 맞지 않고 하는 정도일 듯합니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상대적인 눈으로 보는 자괴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엄마’로서의 삶은 영유아기만이 아닙니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포털 사이트에 우연히 들어갈 일이 있어서 접속했습니다. ‘경기도지식’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평생학습사이트입니다. 그곳에서 부모-자녀관계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코너가 있습니다. 애착, 의사소통, 참여, 자녀훈육, 양육효능감, 양육스트레스의 6가지영역으로 나누어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를 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11살 터울의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영유아기와 청소년기 아이들로 구분해 큰 아이와 작은 아이와 나와의 관계를 체크해봅니다. 오래 걸리지 않은 검사가 끝나고 결과가 바로 보여집니다. 예상했던 대로 청소년기에 접어든 큰아이와는 애착도, 의사소통도, 참여도, 훈육도 보통수준의 상호작용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막 3살에 접어든 물고 빨고 있는 둘째아이는 모든 점수가 ‘높음’으로 보여집니다.
네, 저는 영유아기의 아이들과 코드가 잘 맞습니다. 나름 이런 개인적 특성을 알았기에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아이들의 미운 짓도 그리 미워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그런데 유아기가 지나고 아이가 자라면 아이들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어릴 때 모르고 하던 말들은 어떤 말을 해도 마냥 귀엽기만 합니다. 어떤 말이든 상처받지 않고 웃어넘길 수 있었는데, 머리가 굵어진 아이의 한마디는 오랫동안 제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불끈 화가 나게도 합니다. 사춘기 특유의 따박따박 따지는 말에도 좀처럼 친절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논리가 부족해서도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닌 듯합니다.
유아기가 지난 큰 아이들과의 시간은 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내 아이가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부모님은 유아기에는 아이들을 소소하게 챙기고 보듬어주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던 이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대화가 되는 나이가 되고 나니 훨씬 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좋은 엄마였지만, 영유아기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만 하다 보니 늘 ‘나쁜 엄마’가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영유아기 아이들과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의 물활론적인 사고 따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아이의 유치함에 오그라들어서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놀이에 참여하기보다는 늘 무뚝뚝한 말투와 표정으로 혼자 놀기만을 강요하던 부모들조차도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서 여러 유적지를 여행하거나 좋아하는 팝송을 함께 듣거나, 부모와 함께 악기를 배우는 등 영유아기 부모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도 여럿 만납니다. 이처럼 ‘엄마’의 시기는 깁니다. 아이들의 모습은 세월의 흐름을 따라 점점 변합니다.
부모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살아가는 영아기부터, 부족함, 미숙함이 아이다움인 유아기부터, 조금 더 큰 사고를 하게 되는 아동기를 지나, 나와 친구, 세상에 대해 무한한 관심을 보이는 청소년기,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 결혼을 해도, 내 아이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우리들의 이름은 ‘엄마’이자 ‘부모’입니다. 손길이 필요한 아주 어린 시절 내 아이 ‘엄마’의 모습으로 내가 가진 ‘엄마’의 모습을 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타고난 부모는 없습니다. 태어날 땐 우리 모두 아이였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시간과 함께 나이가 들고, 우리는 점점 ‘엄마’가, ‘부모’가 됐습니다. 아이가 한 살이면, 우리는 한 살짜리 부모였고, 아이가 세 살이면 이제 고작 세 살짜리 부모였을 뿐입니다. ‘엄마’가, ‘부모’가 내 적성에 맞지 않다고 너무 염려하지도 자책하지도 말아주세요. 아이에겐 지금 ‘엄마’보다 좋은 ‘엄마’는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내 엄마가 최고의 엄마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나 칭찬은 사실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을 비교해서 내 아이에게 상처주지 않아야 하듯이, 다른 엄마들과 비교해서 나에게 상처 주는 것도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엄마’ 입니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출처 : 베이비뉴스(https://www.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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